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 22,3-16;마르코 16,15-18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쓰고 싶습니까? 자기 말 잘 듣는 사람? 아니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 둘 중에 말입니다. 내 말 잘 듣는 사람은 복종은 잘 하겠지만 창의력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요. 능력이 있는 이는 마치 야생마 같아서 길들이기가 힘들지요. 그래서 대다수의 사장님들은 말 잘 듣는 사람을 택합니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고 보니까요. 그런데 하느님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보통 오늘 같은 날은 바오로가 회심을 했다는 데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강론을 합니다. 우리도 회심하며 살자면서요. 하지만 저는 그의 체험을 들으면서 하느님이 더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반대한 사람마저 당신의 사람으로 만드시니 말입니다.
필립비서 3장에 보면 바오로는 자신을 이렇게 자랑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입니다. 율법으로 말하자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었고 율법으로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요. 게다가 사도행전 22장에 보면 “나는 로마 시민권이 있다.”고 자랑합니다. 요새로 따지자면 미국 시민권자에 비할 법한 부러울 것 없던 그가, 주님을 체험하고 3일 동안 눈을 못 뜨면서 완전히 무너집니다. 엘리트 중에 엘리트라고 자부하던 그에겐 엄청난 충격이었겠지요. 그가 주님을 뵙고 이런 말을 합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12제자와 달리 그는 예수님을 직접 뵙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무너짐을 통해 참된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는데요.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직접 뵙지 못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 주님을 체험하였고, 이젠 하느님께 부복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능력도 별로 없고, 대단치도 않은 우릴 통해 하느님의 사업을 돕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부여하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저는 미사 중에 ‘신앙의 신비여’ 다음에 나오는 경문이 참 좋습니다. “또한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잘난 맛으로 살았던 우리를 사람답게 다시 살게 해주신 그분께 나는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