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토요일

2012. 1. 6. 오후 11:03:03

글자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요한1서 5,14-21;요한 2,1-11

 기도를 하다보면 좀 언짢게 걸리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존심을 버려야 할 정도로 또는 꺾여야 할 정도가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자존심이 무엇입니까? 한 번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남에게 굽힘이 없이 자기 스스로 높은 품위를 지키는 마음’ 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 살다보면 기도 속에서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때를 만나는데요. 왜냐하면 그분이 꼭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는 당위성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하느님 마음’ 에 달려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이 말씀만 보노라면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하는 말씀이 절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게 돌아갈 때를 만납니다. 여러분은 이런 복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루카 복음 18장을 보면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재판관 이야기입니다.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면서 들어줍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7장에 보면 시로페니키아 여인이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잔인하게도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자 그 여자는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 먹지 않습니까?" 하고 사정하였다. 그제야 예수께서는 "옳은 말이다. 어서 돌아가 보아라. 마귀는 이미 네 딸에게서 떠나갔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내가 기도를 드릴 때 하늘을 감동시키고 있는 청원기도를 드리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하면서 속으로 ‘이 정도는 해주셔야~’ 라고 바라기보다, 오히려 더 낮아지는 자세로 당신께 다가갈 때, 오늘 복음처럼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기적을 베푸시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존심에 매어있기보다 진정 더 낮아져야겠습니다. 사실 아쉬운 사람은 우리니까 말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