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2011. 12. 26. 오전 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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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사도행전 6,8-59;마태오 10,17-22

여기 계신 분들보다 표면 나이로만 따지면 한참 젊기 때문에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예전 제 관심사는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였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좀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잘 죽을 수 있을까?’로 말입니다. 사제로 살면서 많은 죽음을 보고 경험합니다.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에서 사고사, 자살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특히 제 주보성인인 스테파노 성인의 순교를 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그렇다면 먼저 잘 살고 있어야 잘 죽을 수도 있겠지요. 보통은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려 애씁니다. 그래서 복음에도 이런 말씀이 나오잖습니까?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말라” 라는 말씀은 사실 우리가 매일 걱정을 한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제가 유기서원한 프라도 사제회의 설립자이신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님이 저서 ‘참다운 제자’에 보면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좋은 교인, 나쁜 교인, 완전한 교인. 마찬가지로 사제도 세 부류가 있다. 좋은 사제와 나쁜 사제와 완전한 사제’ 나쁜 사제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대다수가 짐작하는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좋은 사제와 완전한 사제는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좋은 사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좋은 사제는 사제로의 직분을 다한다. 교회의 계율을 지키고, 미사를 봉헌하며, 성무일도를 읽고, 필요할 때 강론도 하고, 대죄와 스캔들을 피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착한 일을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의 행실에는 나무랄 것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을 교화하기까지 한다.’ 이게 좋은 사제랍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제의 모습이겠지요. 이제 완전한 사제를 설명합니다. ‘완전한 사제, 그보다 완전을 지향하는 사제란 우리 주를 더 가까이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힘을 기울일 열의를 갖고 있으며,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의 가난과 온화함, 사랑, 영혼에 대한 열성, 그리고 고통과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을 본받기를 원하는 사제이다. 좋은 사제와 완전해지려 노력하는 사제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좋은 사제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 우리 주를 더 가까이 따라가서 그분을 본받으려고 진지하게 힘쓰지 않으며 가난과 헌신, 희생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마음을 쓰며 세속과 자기 동료들의 취미에 굳이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 완전은 소수의 상태다. 그러나 거룩한 사제 한 사람은 착하기만 한 사제, 백 명보다 더 큰 이익을 준다. 거룩한 사제 한 사람이 다른 사제 백 사람보다 더 많은 영광을 하느님께 드리고 다른 사제 백 사람이 회개시키는 영혼보다 더 많은 영혼을 하느님께 돌아오게 한다.’
 
이 쯤 읽으니 슬슬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너무 안일하게 살아 온 것은 아닌가? 한 번 주신 인생을 너무 허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어쩌면 스테파노의 성령에 충만한 삶의 모습을 본 그의 지인들이 느끼기에그를 좀 피곤한 스타일로 느꼈을지 모릅니다. 같은 신자 중에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역사는 끝내 스테파노 성인을 기억하지 그를 욕했던 사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온갖 환난에도 성인은 굴하지 않았기에 하느님을 보며 숨을 거두는 영광을 얻는데요.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내 맘대로 죽을 순 없겠지만, 삶의 마지막에 대한 정리 작업은 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 번 뿐인 삶을, 완전한 교인의 모습으로 바꿔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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