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 시각적인 것이 대세인 세상에서 원시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듣는 것' 에 대해 강조합니다. 하지만 음악을 배울 때에도 처음에는 악보를 보는 것에 중시하지만 음악을 진짜 잘하는, 대가들의 반열에 이른 사람을 보면 ‘악보’를 떠난 ‘음감’을 통해 자유로이 연주하고 노래하고 있고요. 외국어를 배울 때도 책이 중요한 것 같지만 실은 서로 대화하고 있을 때 더 실력이 느는 것을 보더라도 ‘보는 것’ 보다 ‘듣는 것’ 이 중요한 것은 그저 신앙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듣는 것을 잘 살펴보면 소리는 신비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리가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없으면 견디질 못합니다. 아무 소리가 없는 것보다 차라리 작은 음악 소리나 소음이라도 있는 게 낫다고 여기니 말입니다. 사실 이런 듣기를 하는 귀는 밖을 향하고 있는 눈과 달리 언제나 내면을 향합니다. 내면을 향하려면 눈을 감아야 합니다. 눈을 감는다는 말은 신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예전 사람들이 여겼나 봅니다. 사실 옛날 수피교의 예언자들은 장님이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머도 장님이었고 델피신전의 여사제 피티아, 트로이의 카산드라 역시 장님이었습니다. 그들은 눈이 없는 대신 온 마음을 모아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내면으로 소리의 세계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 감각기관 중에 귀가 발달한 사람은 눈의 기능이 발달한 사람보다 덜 공격적이랍니다. 눈이 발달한 사람보다 침착하고 반성적이며 인내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말하기에 앞서 다른 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려 곳에도 눈먼 이가 고쳐달라고 주님을 따라온 이야기나 그들이 오히려 잘 보았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안드레아도 “듣기”를 잘하였기에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얼마나 잘 듣고 살고 있습니까? 이 물음은 드디어 우리에게도 던져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