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간 화요일. 지혜서 2,23-3,9;루카 17,7-10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길 갈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부터 하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 방법을 말씀드리면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왜냐구요? 그 방법은 다름아닌 ‘자기를 내려놓기, 자기를 비우기’ 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은 생긴 것 자체가 자기 욕심을 맘껏 부려볼려고 주먹을 꼭 쥐면서 태어나는가 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는 배운데로 기도손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만 머리가 커지는 중고생 때부터 손이 슬슬 내려가더니 청년이 되면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내가 잘난 사람이니까요. 그러다 직장 잡고 결혼하고 나면 세상 일이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을 알아서인지 그 때부터 다시 마음을 잡아 봅니다. 그러다 다리에 힘 풀리고 주름이 가득한 인생이 되면 예전 어릴 때처럼 가슴팍까지 손을 올리는데요. 그런데 누구도 이렇게 하라고 시킨 적이 없습니다. 교리서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월 속에서 내가 저절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오늘 복음이 그렇습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데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 하겠느냐?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자칫 차갑게 서운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당신이 허락하신 시간과 공간 안에 그 역할을 하면서 살아갈 때, 어쩌면 가장 단순하면서 지혜롭게 사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젊을 때는 자기 인생을 펼쳐본다고 고향을 나서지만 인생의 말년이 되면 다시 고향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많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결국 무언가를 펼친다는 것도, 꿈을 찾는다는 것도 어쩌면 내가 만든 허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간혹 면담 속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그동안 돈도 벌고 승진도 했다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가족에게는 외면을 받았던 어느 가장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가를 이제는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아로 똘똘 뭉쳐져 있던 자신을 내려놓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때, 그럴 때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가 봅니다. 그것이 세상의 흐름을 읽는 자세요, 그 흐름을 알 때 나는 물처럼 모든 것을 포용해줄 수 있는 마음에 생기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