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목요일. 로마서 3,21-30ㄱ;루카 11,47-54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 갖추어진 삶을 원합니다. 집에 살아도 모든 기기들이 완비되어야 편안하다고 느끼고, 핸드폰에도 이제 어플을 비롯한 여러 기능이 구비되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무언가를 그렇게도 만드는가 봅니다. 마치 빈 구석을 계속 메꾸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유독 종교는 그와 반대되는 상태를 지향합니다. 제도적으로 시스템으로 갖추기 보다는 사람들이 보기에 뭔가 좀 허술한 상태를 오히려 더 원하는데요. 제도 교회 안에 교구 신부로 사는 제가, 마치 교구를 반대하는 듯한 입장으로 보실 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교회를 제대로 보고 사랑하자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로 볼 때 313년에 콘스탄티노플 황제에 의하여 그리스도교가 만천하에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를 떠나 홀로 하느님을 만나러 사막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막의 교부라 불리우는 에바그리우스, 요한 카시아누스 등이었습니다. 왜 그들이 제도적 교회를 등졌는가를 보면, 교회가 자유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합법화 되고, 시스템화 되면서 문제없이 주님을 모시게 되었지만, 한편 참된 하느님을 만나는 데에는 제약이 발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시스템이 성령의 자유로운 모습을 다 받아들이기에는 협소한 구석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 주님을 모시는 이들에게는 교육적 차원으로라도 이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너머까지 만나고픈 사람이라면 제도화된 교회를 떠나서 보는 자세도 필요한데요.
오늘 복음에 나온 율법학자들은 자기네 시스템이 너무 젖어들었기에 이면의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오히려 옭아매려고 노립니다. 진정 그들이 제대로 믿는 삶이었다면 진리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리보다는 시스템을 더 우위에 두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게 그들의 한계였던 것입니다. 독서는 말합니다.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믿음의 삶은 현실속에 사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우리도 지금의 신앙을 배운데로 잘 가꾸면서 한편 나의 주관을 넘어서는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힘써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