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목요일

2011. 9. 22. 오후 6: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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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5주간 목요일. 하까이 1,1-8;루카 9,7-9

  주님의 성전은 어떤 곳이어야 합니까? 기도하는 집이요, 가난한 사람이 주님을 찾는 곳이어야 되겠지요. 예전에 지어진 외국성당들을 보면 하느님이 머무시는 집을 지어야 하기에, 모든 열정과 혼을 다 실어 화려하고 웅장하게 짓고자 하였습니다. 성당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단순한 화려함이 아닌, 신앙심과 정성을 나타내려고 말이지요. 그래서 명동 성당, 노틀담 성당 같은 고딕교회를 보면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뾰족탑으로서 마치 기도손을 하는 모양으로 하느님께 신앙의 자세를 가지구요. 성화,성상을 통하여 문맹인 신자들에게 교육이 되며,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유리화에 담겨진 그림으로 하느님은 빛이라는 사실과 복음의 많은 부분을 알게 하였습니다. 사실 요사이에 성당을 새로 짓거나 재건축을 하고자 하면 많이 힘듭니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부담되는 것은 사실인데요. 하지만 한편 자기들이 살 곳은 좋은 곳으로 꾸미면서, 당신이 머무실 주님의 집은 그 정도 수준으로만 작게만 꾸미려는 아닌 지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집은 그저 외면적인 크기가 아니라, 당신의 일을 하실 내 마음의 상태또한 의미하는 것인데요.

  오늘 독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라고요. 판벽은 솔로몬의 성전과 왕궁처럼 집 안의 벽을 장식 판자로 덮은 집을 말합니다. 자기 집은 온갖 장식을 달면서 하느님의 집은 소박하기만을 바랍니다. 말로는 온갖 찬미의 기도를 바치는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지 않았다는 뜻인데요. 하느님을 이렇게 대하다보면, 헤로데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통치자는 시대가 부른 사람들입니다. 어디 표 얻기가 쉽습니까? 대통령, 정치가들을 아무리 폄하하더라도 시대가 그를 요청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부른 그 사람이 잘 살면 문제가 없는데 정작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과 시대를 잘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자리가 자신을 갇히게 만들고, 그 안에서만 맴돌려 하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헤로데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우린 하느님을 어떻게 대해 드리고 있습니까? 올바른 목소리를 거부하다가 오히려 망신당한 예는 수 없이 많습니다. 내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하는 사람일까?를 늘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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