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성모마리아 기념일. 히브리서 5,7-9;요한 19,25-27
살면서 제일 힘든 것이 바로 고통이 다가올 때입니다. 기도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고통을 통하여 무엇을 바라보게 해주는가를 보는데요. 예전 실제 경험했던 일을 들려드리겠습니다. 10시 미사 후 급박하게 레지오 단원 한 분이 환자방문을 가자고 했습니다. 보여주는 문자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작은 신부님(꽁지머리) 신부님을 꼭 만나게 모셔 오셔요.” 라고. 가서보니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분은 호흡기만 없었다 뿐, 얼굴도 팔, 다리가 다 부은 이미 혼수상태셨습니다. 그저 단순한 정기 검진하러 왔다가 우연찮케 입원하라는 소식을 들었고 20여일 만에 영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제 쉰 아홉이었는데요. 공기 좋은 곳에 살겠다고 파주에 집을 짓고 이사도 반 한 상태였다는데 며칠 앞둔 분의 모습이란 것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몸이 싸늘했으니 말이죠. 알아보지도 못하시지만 청력은 마지막까지 살아있기에 귀에 대고 잘 견디시라 했지만 멋있는 말도, 그다지 기운나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워낙 현실이 그랬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부인인 자매님은 그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찾고 계셨습니다. 당연히 슬프고 힘들겠지만 이별을 앞둔 그 시간이 이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인지 잘 견뎌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다음 날 가시고 말았습니다.
오늘 성모님은 자녀와의 이별을 하고 계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라는 아들 예수님의 말을 듣고나서, 그분은 제자의 집에 가셔야 했는데요. 그런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받아들임 속에서 진정한 순종의 정신이 나오는가 봅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순종이란 것은 자기를 꺾어야 하기에 참 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현실을 잘 받아들일 때 우린 희망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자매님도,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봐야하는 성모님도 그리고 각자의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우리도 나의 고통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신 져주셨기에 우린 그 고마움으로 이나마 견뎌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쓰러지지 말아야겠습니다. 서로가 잘 이겨나가도록 기도해줘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