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여러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예전부터 생활해 오던 것과 내가 배우려는 것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다음 여러분은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물론 그 때 그 때 다르다는 답을 내놓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에 제한사항을 놓고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믿으려는 신앙과 예전의 삶이 틈이 생기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을 때 여러분은 어디에 손을 들어 보이겠습니까?’ 물론 여긴 성당이니까 제가 모범답안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여기실 수 있지만 다음 얘기를 들어보시면 아마도 답을 내는 데 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우리 성당에는 1년에 3번의 입교식과 세례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목을 하다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록 예비자에서 신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살아오면서 터득하고 형성하게 된 가치관은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니고 살아왔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신념과 지식이, 교회의 정신과 배치될 때에, 교회의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것을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하는데요. 그런 것 의외로 참 많습니다. 생명에 관한 것, 환경에 관한 문제들 말이지요.
오늘 독서는 이 문제에서 더 나아가 아예 대놓고 말합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 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지혜롭게 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그러질 못합니다. 욕심 부리다가 신세 망친 사람이 그저 남의 이야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가족끼리도 상속문제로 담을 쌓고 있잖습니까?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오늘은 고르넬리오 교황과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이 분들은 순교라는 방법을 통해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복음에 보면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 시중을 들었다.” 표현이 나옵니다. 배추는 소금으로 절여져야 맛있는 김치가 됩니다. 안 그러면 뻣뻣해 먹질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빛과 소금의 정신으로 변화되어 짧은 생각이었던 나를 죽일 때, 참다운 것을 받아들이는 효과를 얻습니다. 그것이 순교요, 같은 재화를 가지고도 주님과 이웃을 돕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지혜로움이 우린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