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수요일

2011. 9. 6. 오후 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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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3 주간 수요일. 콜로새서 3,1-11; 루카 6.20-26.

내가 바라보는 가난과 부의 개념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사람마다 그 관념과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이 정도는 있어야 살만 하겠다.’ ‘이 정도는 갖추어져야 사람구실 할 수 있다.’ 등 그 정도의 차이는 참으로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와중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가난의 개념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참으로 껄끄럽습니다. 쉽게 와 닿지도 않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라니 말입니다. 아니! 무언가가 어느 정도 있어야, 없는 와중에도 사람 구실하는데 가난이 행복하다니 참으로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난함을 통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개방할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의 삶과 하느님 자체를 받아들이는 가운데 주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전 이냐시오 성인은 항상 없는 와중에서 성경책, 교과서를 팔며 가난한 상태에서 강론하길 즐겨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열중해있는 부의 악순환이 가난 안에서 부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회 총장 한스 콜벤바흐 신부님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죄가 생기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선사하시고 생명과 사랑의 보물을 나눠주시는 것을 방해하는 부(富)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부(富)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음에도 그 하느님을 반항하고 단지 지금 가진 것을 편취하여 소유하기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는데, 늘리는데 열중하다보면 진정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 선물을 받습니다. 마음 속 깊이 가난하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가난 안에 숨어있는 부가 무엇인지 압니다. 자신의 없는 와중에도 뭔가 내놓을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참 구원과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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