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모니카 기념일.
똑같은 글자인데 뒤집으면 영 다른 의미가 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선(獨善)과 선독입니다. 독선이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행위라면, 선독은 옛말에 ‘영지버섯과 난초는 깊은 숲에 자라는데 사람이 없다하여 향기를 아니 뿜지 않는다.’ 에서 나온 말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향을 뿜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는데요. 가끔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맛으로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왜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만 골몰하는데요.
오늘 독서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라는 말씀처럼 난초가 홀로 가만히 있어도, 알아주지 않아도 향기를 내뿜듯이 그렇게 산다면 나의 삶을 더욱 기쁘게 살 수 있을텐데요. 복음에 나온 탈렌트를 가진 이들이 더 많이 벌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안에서 기쁨을 간직하며 사는 법을 알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삶의 이유를 잘 모를 때 우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모진 분이어서, 심지 않은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두었습니다.” 자기가 무얼 해야 하는 지에 데에서는 관심이 없고, 그저 주인의 됨됨이만을 따지고 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산다면 그저 핑계와 불평만을 내뿜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은 성녀 모니카 기념일입니다. 아들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기르느라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답니다. 물론 아들이 공부도 잘했고 머리도 천재급이었지만 행실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이런 아들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자책과 하느님을 원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지혜로웠습니다. 현실에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알았던 것이지요. 바로 기도였습니다. 하느님께 빌면서 아들이 제대로 커 가길 바랬던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그저 남이 보기에 힘이 없어 보일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참되게 비는 행동이 아들과 그녀 자신이 모두 성인, 성녀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요. 나의 재능이 뭘까?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각자가 자기 삶을 기쁘게 살려는 힘을 기를 때, 전 인류 모든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음을 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