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화요일

2011. 8. 9. 오전 8: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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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간 화요일. 신명기 31,1-8; 마태오 18,1-14

여러분이 생각하는 ‘성공한 삶’은 어떤 것이라 여기십니까? 많은 이들이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에 이르고자 높은 학력과 경력을 쌓으면서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려고 고르고 또 고릅니다. 밖에서는 그게 성공하는 삶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진정 그게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독서와 복음의 내용은 이와 반대처럼 보이는 모습이 하느님의 뜻, 성공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이집트 왕자라는 출신성분은 좋았습니다만, 결혼해서 처가살이를 합니다. 하기 싫은데 이스라엘 사람들과 홍해바다를 건넙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 편안한 여생을 즐길 줄 알았더니 하느님한테서 “너는 요르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하는 엄명을 받고 거기에서 죽습니다. 무슨 인생이 이리 기구합니까? 예수님의 인생도 기구했지만 양 백 마리를 치는 목자의 비유도 마찬가집니다. 한 마리를 잃자, 아흔 아홉 마리를 남겨둔 채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 이런 비효율이 또 어디 있습니까? 아픈 이야기지만 많은 교우분이 ‘주님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삶의 방식은 세상의 방식이 더 옳고, 효과적이고, 그게 합리적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교육도 그렇게 시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부모의 언행이 자식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니까, 자식이 부모 말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니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바른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려는 욕구도 없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가 새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멋대로 자랐기에, 남의 집에 시집가서는 공연히 분란만 일으키고, 얼마 못 가, 사네 못 사네 합니다. 직장에 나가 일을 맡으면 책임을 다하기는 커녕 문제만 일으킵니다. 그래서 청년 중에도 본당 일을 맡기면 자기가 하기 싫고 힘드니까, 연락을 해도 안 되는, 이른바 ‘잠수’ 라는 것을 탑니다. 자기는 모르겠다면서 말이죠.. 누군가는 하겠지, 나만 아니면 돼~~ 하면서요.

소나무와 대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꽃과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나무라고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곧은 절개를 지키며 늘 늠름함을 교육적으로 바라봅니다. 모세와 예수님은 세상이 볼 때 실패한 인물들입니다. 말년이 안 좋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름은 다른 그 누구보다 더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름이 기억된다는 것, 그게 영원히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자녀들을 영원히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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