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금요일

2011. 8. 5. 오후 2:51:39

글자

연중 18주간 금요일. 신명기 4,32-40; 마태오 16,24-28

  예전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기에게 다가올 죽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런 방법을 썼답니다. 살아있을 때, 자기의 묘표와 묘지를 적고 자기를 애도하는 시를 짓는 풍습이었는데요. 사실 이런 풍습은 중국 후한시대부터 생겼고요. 생전에 자기가 들어갈 무덤을 만드는 풍습에서 유래되었답니다. 이런 풍습이 생긴 이유는, 이들이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고요. 죽음 뒤에 다가오는 구원을 생각치 않았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의 문제를 깊이 성찰했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본래성을 추구하려고 묘표를 적었던 건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시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누구도 자기가 생각한 시간보다 일찍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언제나 내일이라는 태양이 또 떠오를 것이라고, 감히 의심하지 않고 살고있는 우리니까요. 하지만 우린 압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 잘 사는 것이, 그저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 선배는 후배를 위해 비켜주는, 마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어주어야 다른 이들이 배부를 수 있듯이, 그렇게 우린 누군가를 위해 죽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다운 부활신앙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예수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행적은,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주님을 기억한다면, 이제 우린 잘 죽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죽음이 그 사람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연습은, 주님의 품에 안기는 그 시간을, 진정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 1

  • 2011년 8월 5일 오후 8:0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