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저번 1주일간 저에게 새로운 직함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주부’입니다. 주임신부님이 성지순례 가시고, 식복사님도 저번 1주일간 휴가를 가셨기에 우리 김 베드로 신부님이 그냥 굶고 있는 현장을 제가 볼 수 없어서 그래도 선배신부인 제가 후배 신부님을 봉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끼니마다 ‘무엇을 해드릴까?’를 걱정하며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과연 영양가 있는 메뉴는 무얼까? 젊은 베드로 신부님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맞추려 무던 애썼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어려웠던 점 두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베드로 신부님은 미사가 끝나더라도 그냥 사제관에 들어오지 않고 뭔가 모를 시간을 한참 있다가 오십니다. 아마도 교우분들의 어려운 점을 다 들어주느라 그러셨을텐데요. 그러나 저는 주부의 마음으로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데요. 그 날따라 면을 삶아야 하는데, 물은 끓고 있었지만에 면을 넣을 타이밍을 참 맞추기 어려웠다는 점과 간혹 ‘저 오늘 먹고 왔어요.’ 라는 말을 듣게되면 갑자기 화가 나면서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 또한 받으며 ‘내가 누굴 위해 이렇게 준비했는데..’ 하는 생각을 갖게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시작을 했습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 사람의 상황에 닥치지 않으면 쉽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부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남자들은 쉽게 이야기 합니다. ‘여자가 집에서 뭐하냐?’ 고요. 하지만 그런 1주간을 겪어보니, 뭐하는 지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그 사연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사연이 있기에 남들은 절대 이해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25살에 사제가 되어 1년 정도 사목활동을 하시다가 순교를 하셨지만 그 1년을 과연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셨을까? 어떤 헤아림으로 사목을 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도 젊은시절 평신도로 청년활동을 했습니다만 사제가 되고나니 평신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교우분들이 사랑스럽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고, 어떤 때는 미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나니 이기적으로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자, 견디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제가 모셨던 신부님에게서 문자 한 통이 날라왔습니다. “잘 지내냐?” 정말 짧은 한 마디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짧게 보낼 수 없어 그동안 저의 자초지종을 쭉 써서 답장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런 말씀으로 답하셨습니다. “맞아..우리 삶은 대충하는 중간은 없는 것 같아. 이거 아니면, 저거지...” 아마 김대건 신부님도 대충하지 않았기에, 요령피우며 넘어가려 하지 않았기에 기쁘게 순교하시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1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교회에 오직 사제는 당신 하나뿐이었기에 한국교회를 책임져야 하는 엄청난 부담감은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2독서의 말씀이 그분에게는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로마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고요. 어려운 시기가 닥쳤지만 이를 이겨내면서 자신을 수양하고 이를 통해 주님과 합해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왔기에 김대건 신부님은 짧은 삶이었지만 영원히 사는 분으로 거듭나셨습니다.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도 영원히 살고자 이 신앙을 택하였습니다. 그저 ‘지금 살아있을 때 마음 편하게 지내보자’ 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에 우린 이 곳에 모였습니다. 당신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충하고 있는 지, 어떻게든 하루를 넘기려고만 드는 지, 아니면 정말 모든 것을 걸면서 애쓰고 있는 지 말입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삶을 이해심을 가지고 바라보려는가를 헤아리고 애쓸 때, 나는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물리적으로 짧은 삶을 사셨지만 영적으로는 영원한 삶을 사시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