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2011. 6. 23. 오후 8: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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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야 49,1-6;사도13,22-26;루카1,57-66.80

 아기가 태어나 돌이 되면 돌잔치를 한답시고 돌잡이를 거행합니다. 그래서 책과 연필을 집으면 박사나 교수가 되는가보다 여기고, 실을 집으면 오래 산다는 뜻도 되지만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의사를 기대해봅니다. 돈이나 신용카드를 집으면 부자가 되려나 보고, 쌀을 집으면 넉넉한 재력가가 된다고 여기고, 마우스를 집으면 스티븐 잡스처럼 유명한 사람이 되려나 본답니다. 장난스레 하는 행사이지만 이처럼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하고 또 부모가 바라는 대로 살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은 어떤 아이를 바랬을까요?

 요한 세례자는 출생부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즈가리야는 말을 못했고 엘리사벳은 늦은 나이에 임신하였습니다. 게다가 성모님과 대면하였을 때는 아이가 태중에서 서로 뛰놀기도 하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나게 한 인물이었는지 그는 커 가면서 자신의 할 일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나는 그분이 아니다.” 라면서 자신의 신원성을 밝혔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제자가 많았음에도 나중에 예수님이 등장하시자 자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가라고 얘기합니다. 이처럼 구세주가 오셨다고 해서 모든 것을 놓고 자신을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돋보이기 위해 능력이 없어도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세상에 세례자 요한은 높았지만 더 높은 분을 위해 떠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날 때 가졌던 모든 사람의 의문인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이처럼 명확하게 산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이 내신 사람이라지만 우리도 분명 하느님이 내셨습니다. 그러면 그와 우리가 무슨 차이가 나야만 합니까? 아니지요. 우리도 당신의 귀한 자녀라면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에 초점을 맞추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귀 기울임이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나의 삶에, 밝은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나를 본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며 무언가를 기대하였습니다. 아직 나의 삶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는 이유를 하느님께 여쭤보며 물어볼 때 나는 성경의 인물처럼 확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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