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7 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22,30-23,11;요한 17,20-26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는 오늘 주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다들 같은 하느님을 믿는다지만 문제는 자기 식대로 믿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요. 자기식으로, 자기가 속한 단체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자세는 자칫 주님의 모습을 협소하게 바라다 볼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바리사이, 사두가이등의 율법학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지금은 강의 시간이 아닌 강론시간이지만 이들이왜 논쟁을 하면서 사이가 벌어졌을까에 대하여 이들의 차이점에 관해 잠시 소개할까 합니다.
사두가이들은 옛 전통에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입니다. 바리사이와 달리 입으로 내려오는 구전전승에는 반대하면서 오직 쓰여진 말씀에만 충실한 이들입니다. 게다가 사두가이들은 바리사이들이 말하는 죽은 후에 간다는 '쉐올' 을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저 세상에서 무위도식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영혼의 불사불멸, 미래 세상에서의 보상, 부활 등과 같은 교리를 거부합니다. 사두가이들은 귀족 사제층이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과는 거리감을 가지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사업을 벌이는데 힘씁니다. 반면 바리사이들은 성경 이외에 내려오는 구전전승을 받아들였고요, 자기방식대로 교리를 토착화 시키면서, 자기들을 지배한 헤로데에게 환멸을 느낀 나머지, 메시아적인 희망은 오직 율법을 지키는데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자만심이 오히려 자기들에게는 걸림돌로 작용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바라보는 차이가 있었기에 참된 주님을 찾기보다는, 자기가 속한 곳, 속한 단체와 배경의 틀을 가지고 바라보는 모습을 관철시키며 살았기에 그들은 주님을 왜곡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티아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인 12제자들이 끝내는 모두 순교의 길을 걸었지요. 물론 처음부터 깨끗하게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가지고 있던 욕심과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주님께 다가갔습니다. 처음의 이유는 그랬다 할 지라도 후에는 령의 도움을 받으면서 진정 그들은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었고요. 렇게 하여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 걸어간다는 것,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단체에 더 신경을 쓰며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다른 종교인 중에도 성인들이 있습니다. 한 인간이 참된 구도를 통하여 자신을 갈고 닦는 수련과 노력을 했기에 참다운 위인의 반열에 들 수 있었듯이, 주님의 영을 받고 사는 우리도 당신의 영을 받아들이면서 참된 수련을 통할 때, 그동안 당신의 뜻을 얼마나 바라보고 살았었는가? 를 봐야 할텐데요. 그래야만 내가 원하는 것에만 매달리지 않고, 진정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주님의 목소리에 나도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