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금요일.사도행전 15,22-31; 요한 15,12-17
예비자 교리를 하다가 예비자 분들에게 이런 것을 묻곤 합니다. ‘왜 신자가 되기로 하셨어요?’ 라고요. 이른바 입교동기를 묻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하고 말씀하지만 또 한편으로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곤 한다는 대단한 말씀도 하십니다. 또 그 중에는 제사를 드릴 수 있어서.. 하고 말씀하는 분도 계십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제사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사를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윤지충이란 분은 제사가 우상숭배라 여겨 신주를 태운 사건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를 욕할 수도 없습니다. 당시 믿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옳다고 여겼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끝내 교황청에게 우리의 민속예절을 잘 전달한 결과,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닌 조상을 위한 예절이라 말했기에 오늘날에도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다보니 아마도 여러 지방의 문화와 부딪히면서 문제가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였는데요. 살다보니 저도 이런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사랑’ 임을 말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서로 사랑하여라” 하고요. 논어의 자장편에도 보면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드나듦이 있어도 괜찮다’ 는 말이 있습니다. 즉 큰 덕에 관계된 것은 엄하게 지키되 세간의 세세한 예절은 조금 소홀히 했다는 것인데요. 물론 작은 것부터 잘 지켜나가야 큰 것도 문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것이 내가 세운 법이라면, 나만의 관점이라면, 그래서 서로의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우린 피조물인 사람이기에 서로간의 실수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것을 어떻게 서로 봐 주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당신이 말씀하신 참된 친구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도 친구들과의 관계 잘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