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성소주일

2011. 5. 15. 오후 3: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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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4 주간 성소주일

교우 여러분, 일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강론에 앞서 한 가지 일화를 말씀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주교님께서 미사중에 신자들에게 강론을 하셨습니다. 강론의 내용은 요즈음 들어 성직자, 수도자의 수가 예전에 비해 부족해지고 있다는 강론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주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의 많은 가정에서 자녀를 하나만 두고는 다른 직업을 택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집집마다 자녀를 셋을 가지게 하여 하나는 아버지가 되게 하고, 또 하나는 어머니가 되게 하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교회를 위해 일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강론 하셨습니다. 그러고 며칠 후 주교님은 동네를 한 바퀴 도시다가 대형마트에서 임신 중에 있던 신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여성은 동네에서 주교님을 만나게 되자 너무 기뻐서 큰 소리로 주교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교님! 뱃속의 이 아이가 주교님 아이에요.”

  오늘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대부분 본당 학생들은 신학교에 갑니다. 신학교를 안 가본 것은 아닐 테지만 거기 사는 학사님, 부제님들이 과연 무슨 생각으로 사시는가? 왜 그 길을 택했을까? 그러면 나는 왜 나의 길을 가겠다고 정했을까?를 생각해 보는 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앞의 유머에서 나왔듯이 주님께 생명을 받고 사는 우리이지만 다시금 이것을 돌려드리고 나를 어디로 이끄시려하는가? 하는 의문과 질문 속에서 주님께 다가가는 길도 열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소주일을 맞이하면서 저의 성소 동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20대 중반까지 전혀 주님의 길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성당에서는 단지 주일미사 나오고 청년 활동 한 개쯤 하는 그저 평범한 신자였고 밖에서는 제가 하고 있는 연극을 잘하기 위해 극단에서 노래 연습도 하고 목소리도 키우고 다듬는 연습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극도 하고 박수도 받고 하니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간단한 답은 나 자신과 나를 지켜보는 관객을 위한 것이었지만, 유명해지건 유명해지지 않건 간에 하느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찾아가며 살 수 있을까? 혹시 나를 쓰시기 위해 다른 더 많은 것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란 생각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그 분이 부르신다는 것에 대해, 자격은 없지만 그럼에도 주시는 그분의 뜻에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에게 점차 기울어짐은 성소라는 하나의 표징을 이루었고 차츰 이사야 예언자처럼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주십시오” 라는 확실한 대답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재능도 없고 잘 하는 것도 없는 제가 점차 신자들을 만나면서 며칠 전 봉성체를 다녀왔습니다. 저희 본당은 봉성체하는 숫자가 적습니다. 많아야 20집 내외니까 말입니다. 거동하기 힘드시기 때문에 미사에 못 나오시는 것을 어르신 분들은 참으로 답답해하시는 듯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신부와 수녀님, 그리고 많은 신자 분들이 같이 모여 기도해주면서 성체를 영하게 해 주는 이 시간을 체험하면서, 성체를 모시는 분들은 그 시간이 기쁨으로 다가왔고 그것을 지켜보는 반장, 구역장님들은 자신들이 건강한 것에 대해 감사해 하면서 성체를 정성스레 영하는 모습에 많은 감화를 받았으며 그 성체를 영해주고 있는 저는, 이 직무가 참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발견하면서 주님께 찬양을 드리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만을 바라보던 청년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를 이루어 이웃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와 성장은 당신으로 인하여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우린 이곳에 모여 있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각의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저 남이 하는 방식으로 편하게 가려 합니다. 맞지 않는 옷을 어떻게든 껴입으려고 합니다. 과연 주님께서 바라시고 마련해주시려는 것을 어떻게 듣고 계십니까?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아 방황하고 계십니까? 마음을 통해 울려주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응답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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