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 토요일. 에제키엘 37,21-28; 요한 11,45-56
여러분은 뉴스를 잘 보십니까? 한동안 저도 잘 봤습니다만 이젠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왜냐하면 일을 저지른 사람은 있는데, 그것을 책임질 사람은 나타나려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사고가 났지만 그것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없는 현 실정을 보면서, 매번 비슷한 사람들의 이 행각을 과연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요. 그럼 여러분은 각자가 맡은 책임감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오늘 복음에 예수님의 행각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의회를 열다가 대사제인 카야파가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발언으로 예수님의 수난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예언으로 예수님이 돌아가시지만, 진정 승리하는 분은 바로 예수님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죽인다고 작당하고 결의를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주님께서 바라신 것이었음을 진정 알았을까요?
점차 많이 배운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분석적이고, 명확한 면은 예전보다 뛰어날 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껴안고 가야 할 사람은 점점 보기 힘든 현실입니다. 많이 배웠기에, 예전보다는 당장에 무엇이 편하고 무엇이 힘드냐? 하는 판단은 빨라졌을 지 모르지만, 그 반대로 그 너머에 진정 얻을 수 있는는 면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요.
우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책임을 맡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면 남에게 안 좋은 소리도 들어야 하고, 그에 따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책임을 통해야만 얻는 것도 있습니다. 그건 바로 주님의 섭리입니다. 내가 일하지만, 나머지는 맡겨야만 알 수 있다는 섭리는, 세상의 일은 내가 시작하고 완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진행의 상태임을 알게 해줍니다.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극적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욕 안 먹기 위해 도망가기 바쁘지만, 주님은 그것을 껴안으셨기에 구약의 예언은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가 하나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나는 지금의 위치에서 할 도리를 다 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