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2011. 4. 19. 오후 4: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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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화요일. 이사야 49, 1-6; 요한 13,21-38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는 이런 교육을 합니다. ‘자~ 예수님이라면 너 같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이렇게 말하면 대다수 아이들은 자기 욕심만 차리던 모습에서 고쳐 보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머리로는 그렇게 해야 함을 알겠는데 막상 따르자니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해보지만 당장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답답하게 느껴지고,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자니 내가 바라는 것을 접어야 하고, 그러니 나는 미치겠고,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하면 딱 좋겠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니,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을 만나고 마는 되는데요.

오늘 유다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한 방식대로 일을 감행합니다. 자기 선생님인 예수님이 가려는 십자가 길이 너무 어리석어 보이기에, 그를 배반하기로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자신을 아시는 지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하십니다. 그럼 내 의견에 찬동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기어이 그대로 일을 진행시킵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알게 됩니다. 자신은 죄 없는 사람을 팔아넘겼음을, 그리고 은전 삼십 닢을 준 사람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말입니다. 그의 결론은 스스로 목을 메는 것으로 답을 몰아갑니다. 다른 방법도 있었지만 자신이 짜낼 수 있는 답은 결국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주님의 방식대로 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가 보고 있고, 보고싶은 나 혼자만의 방식만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 방식이 자신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게 만드는 결론에 이르는데요.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말로는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고 고백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그 상황이 닥치게 되면 나는 또 기어이 내 방식대로 일을 진행하려 듭니다. 왜냐하면 당장에 편하고 좋아 보이니까요. 하지만 매번 고해성사를 보듯이 좋은 결론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아는데요. 이제 유다의 상황이 나에게도 왔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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