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 목요일

2011. 3. 17. 오전 12: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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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간 목요일. 에스테르 4,17;

여기 계신 분들은 그래도 주일미사만 참여하시는 분들보다는 기도도 많이 하시고 또 열심히 하려는 분들이십니다. 그래서 질문 한 가지 던져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관하여 기도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당신께 말씀드리고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는 나도 무언가를 비는, 청원하는 기도보다는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다 고요. 그런데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인 이상, 무조건 감사만 드리는, 찬양의 기도만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스스로가 부족하기에 당신의 빛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찬미의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 전제란, 하느님과 나와의 사이에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독서에 에스테르 왕비는 이런 기도를 합니다.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에스테르는 이미 조상들로부터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들어서 교육 받았을 것이고, 본인도 기도하면서 그 들음이 확신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복음에도 예수님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이런 말씀을 들으며 우린 이런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이제 어떤 것도 갈라놓을 수 없고, 당신 말고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점이나 미신 등 다른 어느 곳에 뭔가를 기대고 있는 분이 있다면, 하느님 갖고만은 안된다고 여기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계신 분이실텐데요.

내가 청하는 기도가 지금 어떤 수준에서 머물고 있습니까? 그저 현실 속에서 바라는 것들, 당장 예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한정을 짓는 것은 아니신지요.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이제 그걸 너머서는 청원, 당장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랑이 넘치는 지향과 마음일 때라야 당신을 감동시키는 기도로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댓글 1

  • 2011년 3월 18일 오후 12:3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