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간 수요일

2011. 3. 1. 오후 11:15:03

글자

연중 8 주간 수요일. 집회서 36,1-22;마르코 10,32-45

저희 큰 아버지는 비신자이십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그런데 제가 막 사제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관심있다는 듯이 질문이란 것을 하셨습니다. 그 무뚝뚝한 분이 말입니다. 그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그래.. 곽 신부님이 다니는 성당은 신자가 몇 명이나 되나요?” 그 때에는 출신 본당에 있었기에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 큰 아버지. 신자 수가 한 8천명 가량 됩니다.” 그랬더니 그분께서 이런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아이구 성공했구만..” 그 분께서는 저를 마치 회사의 CEO처럼 여기면서 성공이란 단어를 쓰시고 있었는데요. 그럼 과연 제가 사회에서 말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일까요?

예수님은 오늘 참으로 진지하게 당신에게 닥칠 일을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절로 숙연해지는 분위기인데 야고보와 요한은 이런 제안을 합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을 실 때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실은 말은 안했지만 다른 제자들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 복음이 있습니다. 루가 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이 서로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 더 크냐는 다툼을 하지요. 하지만 크다, 작다는 것은 그저 상대적인 개념일 뿐입니다. 밥주발을 떠올려 보십시오. 큰 그릇은 작은 그릇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작은 그릇은 큰 그릇 속에 들어갑니다. 즉, 자기를 큰 사람으로 여긴다는 말은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울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작게 여기면 모든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는데요. 당신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고요.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큰 사람이라 여겨서 초라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작은 자가 되어 참된 초월자인 하느님과 하나가 될 것인가? 말이지요. 주님의 참된 구원의 상황은 그 선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