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금요일

2011. 2. 17. 오후 9: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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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간 금요일. 창세기 11,1-9;마르코 8,34-9,1

여러분에게 외로움이 닥쳐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십니까? 어떤 분은 취미활동을 하시겠고요. 어떤 분은 옆집 아줌마와 수다 한판을 벌이실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분은 혼자 또는 마음 맞는 분들과 주(酒)회를 벌이실 수도 있는데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가오는 외로움, 고독, 이거 어떻게 풀어나가십니까? 앞서 열거한데로 피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가지각색이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고독을 피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고독은 내가 제대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신호를 주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으려 합니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자기를 드높이는 것, 인간이라면 가슴속에 누구나 어느 정도 품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것을 하느님은 경멸하십니다. 복음에서도 당신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요. 자신을 세우기를 바라는 세상에서, 자기를 드높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자기를 버리랍니다. 왜 이런 말을 우리는 자주 들어야 할까요? 전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라면 자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요. 가끔 옆구리에서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기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기름기를 걷어버리고, 부글거리는 거품을 걷어내고, 진흙탕 속의 부유물을 걷어내고 나를 본다면 나 자신을 내세우려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내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참된 자아가 보이니 말입니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바닥이 보이니 말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여럿 들었습니다. 방배동에 살다가 사업이 망해 창피하다고 이 동네를 다시 찾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러나 어떻합니까? 희망은 피한다고 찾아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잠깐의 인간적인 창피함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근저에 깔려있는 서로를 도와주려는 기도와 공동체의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우리의 이웃도 어떻게 이끌어 주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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