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디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2티모테오 1,1-8;루카 10,1-9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에 보면 처음 그 지방으로 부임하는 관리는 이래야 한다 하며 써놓은 글이 있습니다. ‘행장을 꾸릴 때 의복과 안장을 앉은 말은 본래 있는 그대로 써야 하며 새로 마련해서는 안된다.’ 면서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데 있으며 아낌의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치 위풍을 떨치려는 듯이 행장이 사치스럽고 화려하면 백성들이 ‘알 만하다’ 하고 씽긋 웃을 것이요, 검소하고 질박하면 오히려 놀라면서 ‘두렵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티모테오와 티토 주교는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라고 하였듯이 아마도 바오로를 만나 개종했으니 초기 교회 모습답게 항상 떠날 수 있는 모습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일흔 두 명을 보내면서 그야말로 청렴한 선비처럼 복음을 전파하기를 바라십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언가에 기대고 무언가를 드러내야 하는 인간의 심성을 꼬집으시며 가르치십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 분을 드러내는 것이지, 나 자신을 알아달라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뭔가를 자꾸 보태려고 합니다. 자꾸 첨가하려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필요하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나를 자유롭게 보지 못하고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그 안의 갇힌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진정 당신의 말씀의 힘이 어떤지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살려주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전하면서 그야말로 청렴하게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부자청년의 모습을 잘 압니다. 그는 계명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안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유심히, 아주 대견스럽게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거기까지였습니다. 놓지 못했기에 머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린 변화되길 바라기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럼 어디로 이끄시길 바랍니까? 이제 여러분 인생의 주도권은 하느님 것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