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요한1서 1,5-2,2;마태오 2,13-18
오늘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축일입니다. 이런 날에는 보통 낙태된 아기들을 위해 미사를 드린다거나 예전 유산을 했던 또는 시켰던 어머니들이 만날 수 없었던 아기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날로 이어지는데요. 그만큼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여성들에게 임신이라는 것, 게다가 아기라는 존재를 키우면서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은 참으로 신비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범위를 넓혀서 과연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았는가?를 보았으면 합니다.
우린 쉽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 뜻에 맞게 키워야지요.’ ‘자기 길 잘 가도록 뒷바라지 해주어야 하지요.’ 하지만 정말 급박한 일이 터지면 어떻습니까? 뒷바라지, 뜻.. 그런 것은 온데간데 없고 놓지 못하는, 참견을 하고야 마는, 그래서 부모인 나의 뜻을 이뤄야 하는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로도 이용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모진 면을 바라보면 과연 누구를 닮아 있다고 여기십니까?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를 닮았다는 생각 들지 않습니까?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렇게 잔인하게도 아이의 기를 죽이고 있습니다. 내 뜻을 이뤄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또 한편 본인 때문에 일이 그르친 것을 보고, 마치 자식을 잃은 부모 마냥 애타게 후회합니다.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자녀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었나 말입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우리의 약한 면이라 하겠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본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식을 나의 분신이라 여기면서 또 한편 내 안에 소유물로 여겼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나의 모습, 이제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현재 내가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보며 사랑을 다시 배워야 하겠습니다. 헤로데의 욕심으로 인해 살해되었던 아기들처럼, 나의 욕심 때문에 내가 낳은 생명의 기를 죽였던 적은 없었는가 바라보면서 참되게 사랑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