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이사야 40,1-11;마태오 18,12-14
여러분의 휴대폰을 열어보시면 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쭈욱 나올 것입니다. 몇 십명부터 몇 백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사람 좋아하고 챙기시는 분들은 그 숫자가 더해가면서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이 리스트에 올라있을 것인데요. 그럼 그 이름들을 보시면서 이런 질문 던져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안에서 ‘내 편, 내 사람’ 이라고 칭할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한 사람? 두 사람? 열 사람?
오늘은 암브로시오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이 분이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이 분의 강론을 듣고 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분의 말씀은 신자와 비신자 가리지 않고 영향력이 있을만큼 죄인들을 감싸주었고 모든 이들의 영혼구원에 힘쓴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한 마리도 잃지 않으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린 어떻습니까? 내 머리상의 리스트에는 좋아하는 사람, 귀중한 사람도 있지만 별로인 사람, 떼어버리고 싶은 사람, 스팸처리 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을 우린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잃은 양’ 이라고요. 독서에 나온대로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고 되어있습니다만 우리는 기껏 한다는 게 골라가며, 봐 가며 실천합니다. 나의 시각에서 이른바 ‘제껴진 사람’ 은 리스트에 없는 사람이기에 ‘죽은 사람’ 이라 칭할 수 있는데요.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라도 더 구하시려 애쓰시는데 말입니다. 왜 우린 그 한계에 머물고 마는 것일까요? 나의 한계를 미워하기 보다는 더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놔버리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 범위가 넓은 사람으로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냥, 아무 이유없이 안부 묻는다고 전화하는 겁니다. ‘잘 살아있냐? 별 일없냐? 그냥 해봤어.. 추운데 잘 지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고 전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