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묵시록 15,1-4; 루카 21,12-19
신앙인으로 살다보면 세상과 유리되어 살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세상 사람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그런 지 요즘 인터넷 뉴스나 언론 보도를 보게 되면 거기에 쓰이는 표현들이 굉장히 거세고, 품격이 없어 보이는 직설적인 어법을 많이 쓰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 지 사람들도 가슴 속에 심지 하나씩을 세워두고 사는 듯 여겨집니다. 마치 ‘건드리기만 해봐라.. 당장 불질러 버릴테다.’ 하는 기세로 언제라도, 가까운 누구라도 자신이 피해를 볼 것 같은 상황을 느끼면 당장이라도 어떻게 할 것 같은 기세로 사람들을 대하는데요. 그럼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정말 우리를 넘길만한 사람들은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인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라는 표현처럼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당연히 이런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 자신은 날카로워집니다. 도덕경 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여 엉클어진 것을 푼다.’ 고요. 세상은 사람들이 예리하고 똑똑하길 바라면서 교육을 시키고 그런 사람을 떠받듭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자연을 보호한답시고 나서지만 오히려 더 엉망이 되는 것을 보잖습니까? 하느님의 뜻이 잘 이루어지려면 나의 작위적인 행태를 버려야만 합니다. 빌라도 앞에 서셨던 예수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앞에서 아무런 해명도 안하신 것은 바로 상대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는 행위였습니다. 철저히 기다리면서 그 뜻을 기다릴 때 상대방의 날카로움은 자연스레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보통 경우, 해명한답시고 갔다가 오히려 싸움만 더 커지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봅니까?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뭔가를 바라볼 때 대단히 호흡이 짧아져 있음을 봅니다. 그러다보면 진정 당신의 지혜있는 뜻이 뭔지를 헤아려 보지 못하는데요. 당장 피해입는 것처럼 여겨져도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