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 요한 2,13-22
예전 제가 신학생 때 일이었습니다. 단추공장을 인수한 그 성당은 본당의 노후화로 인해 그곳에서 10년 동안 미사를 드리다가 신자수가 늘어나면서 재건축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당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창고 건물을 월세로 빌리면서, 2년 동안 그곳에서 미사를 드려야 했는데요. 하지만 말처럼 다른 곳에서 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창고건물이니까 아무리 난방을 해도 열이 금세 사라지고요. 여름에는 장마라서 습기가 말도 못합니다. 월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었는데도 주인은 이를 고쳐주지도 않고 안하무인격으로 ‘싫으면 너희가 나가라.’ 는 식으로 응대했습니다. 신자들을 생각하면 이미 몇 개월이 지났기에 이제와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던 중 장마철이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미사 도중에 비가 새다 못해, 오른쪽 벽을 타고 비가 줄줄 폭포처럼 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이없는 그 광경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노라 알렐루야..” 그렇게 고생을 경험한 신자들은, 새 성당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편 27장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주님께 청하는 단 하나 나의 소원은 한평생 주님의 성전에 머무는 그것 뿐, 아침마다 그 성전에서 눈을 뜨고 주님을 뵙는 그것만이 나의 낙이라.” 그저 성전에 머물러 기도하는 삶만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다윗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린 무슨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입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별궁인 라테라노 궁전을 바치면서 지금의 로마 베드로 대성전이 생기기 전까지 쓰였던, 가장 중요한 성당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몰래 숨어서 행했던 신앙이 공인되고 그 곳에서 미사를 마음껏 거행하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해외여행이나 성지순례를 다녀보면 외국 성당은 참 이쁘고 크고 멋있게 짓는데,, 우리나라는 왜 그래?’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지는 않았습니까? 외적인 아름다움에 눈이 멀기보다, 우선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여 이루어진 ‘모인 이들의 공동체’ 인 성전을 바라보면서 내가 주님의 말씀과 영이 살아 숨 쉬고 베어있는 이곳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우선 살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외국의 성전은 아름답습니다. 그러한 치장이 자신들의 신앙을 돋보이게 해주는 한편, 문맹이었던 당시 사람들을 그림과 조각을 통해 이끌어주는 계기도 마련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역사의 흔적을 가진 요즘의 모습은 어떤지 아십니까? 막상 있어야 할 신자들은 안 보이고 관광객만 흘러넘치는 박물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당 의자도 치워지고 관광객을 위한 미술관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 요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성전정화 사건을 벌이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십니다. 과연 주님의 집은 어떤 모습일 때 가장 성전다운 모습이겠습니까? 그저 건물의 형태만 성당이 아닙니다. 성체를 모시는 나도 당신의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성전을 당신 자신을 두고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겠다.” 라고 말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면 정말 하느님처럼 닮은 예수님의 모습대로 살아갈 때, 우린 진정한 성전의 모습을 띨 수 있습니다. 내 안에 하느님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욕심, 거짓, 오만 등이 가득하다면, 미사 때 아무리 성체를 모셨어도 우린 성스러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전에 갖고 있던 나의 성전을 허물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제대로 세울 때만이 우린 굳건한 성전의 모습을 갖출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건물이 있어야만 성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여 있다면 그 곳은 이미 성당입니다. 그렇다면 모인 이들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입니까? 진정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리고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주님을 대하는 태도로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린 이미 주님의 사람입니다. 언제나 그런 삶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