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목요일. 에페소서 3,14-21;루카 12,49-53
저나 수녀님이 검정 계통의 색깔을 입는 이유는 세상에서의 죽음을 의미합니다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많은 분들이 검정 계열의 옷을 선호합니다. 검정색이란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냥 단순히 까만색이 아니라는 점을 말입니다. 예전 학교 다닐 때 이런 실험을 하였습니다. 얇은 종이 위에 검정 싸인펜으로 콕 점을 찍어놓고 그 바로 밑에 물을 받아놓으면 여러 색깔이 퍼지면서 검정 색이 여러 색깔의 복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데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는 까마귀도 그저 까만 새로 알려져 있지만 그 놈이 고개를 돌리면, 빛에 반사에 따라 그 까만털이 붉게도 푸르게도 반응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저 쓰윽 보는 것만으로는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긴데요.
오늘 복음에 당신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우린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알기를 한 방향으로만 종속시키려는 안 좋은 습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보고싶은 면만 보겠다는 것이지요. 예전 영화제목으로도 쓰였지만 ‘불편한 진실’이란 말처럼 참된 진리란 보기 싫은 현장도 볼 줄 알 때 하느님의 여러 면을 통해 참다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데요. 하느님으로 인해 맞서 갈라짐은 신앙의 여정의 길에 참으로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못 받아들이면 중도 하차하여 떨어져 나갈 것이고, 받아들인다면 끝까지 그분의 도움을 믿고 확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신앙은 매번 계속적인 선택을 제시합니다. ‘나랑 계속 하겠느냐? 아니면 여기서 멈추겠느냐?’ 하고요. 보고 싶은 면만 보겠다면 거기서 멈추는 것이고요. 계속 하겠다면 더 큰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니까요. 그래서 독서에서도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의 보고 싶은 면만 보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 이상도 받아 들일만한 준비가 되어있는지 자기에게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