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간 금요일. 고린토1서 15,12-20;루카 8,1-3
질문 한 가지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 잘 보이십니까? 지금 모든 게 뚜렷하게 잘 보이십니까? 그럼 무엇이 변화되셨습니까?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태생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체험을 하면서 그는 당신이 주님이심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고요. 포루투칼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라마구의 소설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눈먼 자들의 도시’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대충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온 도시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이는 알 수 없는 전염병에 걸립니다. 주인공만 빼고 말이죠. 너무 황당한 이 사건은 ‘모두가 안 보이니까 모르겠지..’ 하는 마음서 사람들의 어두운 욕망들은 고개를 쳐듭니다. 식량을 탐하고 강간과 살인, 무단으로 용변을 보며 자신의 욕망을 앞세웁니다. 여지껏 잘 세워놨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문명이 중단되면, 얼마나 원초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를 가감없이 풀어내고 있는데요. 마지막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볼 수는 있었지만 보지 않았던 눈먼 이들이었다는 거지요.’
오늘 복음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중에 악령과 마귀걸린 여자들이 주님을 따릅니다. 그들이 왜 그랬겠습니까? 단순히 병을 낫게 해주어서요?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으로 인해 새 세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보지 않았던 세상을 주님으로 인해 보는, 안목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화답송에도 ‘깨어날 때 당신 모습이 흡족하리이다.’ 하고 찬양을 드리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아직 보지 못했다며 지금의 것에만 목을 맵니다. 독서에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라고 나오는데요. 뭔가 체험을 하셨다면 무엇이 보이십니까? 아직도 주저한다면, 자신의 욕망에 갇혀 사는 이들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여러분 정말 잘 보이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