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토요일

2010. 9. 10. 오후 1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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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간 토요일. 고린토 1서 10,14-22;루카 6,43-49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 보실 줄 아십니까? 아니면 그저 남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에 화만 내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관찰을 잘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많은 비유 말씀을 살펴보면 그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런 관찰의 과정.. 나에게도 잘 적용하십니까?

오늘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얼마 전 본당의 어떤 청년과 저녁에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술도 얼큰하니 들어갔고 기분도 무장해제 된 상태라 자신이 횡재한 사건 하나를 늘어놓았는데요. 스토리는 이러했습니다. 외국의 호텔에서 신분증도 있고 몇 백 달러나 들어있는 지갑을 주웠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거 어떻게 했어요?” 하고 물으니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가 기쁘게 썼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신고 받은 호텔직원이나 경찰이 그것을 혹 자기가 가지더라도 그 책임은 이미 내 품을 떠났고, 나는 그저 할 바를 하는 것이 중요 했을텐데.. 그는 그만 유혹에 넘어간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에겐 그런 상황이 다가옵니다. 그것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분별의 상태를 말입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는 말씀이 나에게 실현화 되는데요. 이런 유혹이 올 때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는 말씀처럼 그저 마귀 탓만 하실 것입니까?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 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마치 비 많이 오는 요즘 이야기 같은데요.

모두들 잘 살고 싶어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성적으로 대처하던 예전보다 확실히 요즘에는 감정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듯 합니다. 분위기와 기분을 맞춰주면 뭐든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습니까? 그 똑똑하다는 장관 후보자들도 분별 못하는 행동을 하잖습니까? 우리는 지금 복음적인 것과 비 복음적인 세상을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이라는 기준이 되는 분을 모시고 삽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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