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축일. 묵시록 21,9ㄴ-14; 요한 1,45-51
교우분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과연 신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냐? 하는 문제입니다. 뭐.. 명칭이 신학과이니까 당연히 신학을 배우겠고요.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으니 성경도 배울 것입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들어가고 보니, 이걸 왜 그리 많은 시간동안 배정하여 학점을 따라고 한 건지 알 수가 없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철학이었습니다. 학제가 시대에 따라 차이는 조금씩 있을지언정 고대철학부터 시작하여 중세, 현대를 거치면서 논리학에다가 미학에 이르기까지.. ‘여기가 신학과야? 철학과야?’ 볼멘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학점을 이수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모르는 비신자들인 그리스 사람의 생각을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 지, 처음엔 몰랐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배우고 나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 신학을 배우게 되다보면, 비이성주의적인 모습에다가 ‘무조건 믿어라’ 하는 맹신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시간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성의 그릇을 잘 만든 후, 다가오는 초월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필요의 시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타나엘이라 불리면서 바르톨로메오로 알려진 이가 말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맞는 이야기입니다. 예언에도 나자렛은 나오지 않는 그저 작은 시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의 처음 단계는 그저 이 수준에서 머물렀습니다. 현실에만 몰두하는 삶이다보니 자기의 주관만 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면서 그의 시각은 달라집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고요.
며칠 전 저는 부산에 있는 수녀원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수도원, 수녀원의 삶을 멀리서 쳐다보면 참으로 기적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전국 각지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하나의 카리스마를 형성해가니 말입니다. 현실주의자들이라면 분에 안 맞아 언제라도 나올 곳을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꼭 철학을 배우지 않아도 우린 이미, 삶에서 많은 것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전에 그러지 않았던 내가 말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변화되는 과정을 잘 보시면서,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내가 될 때, 현실의 세계에서, 초월의 세계로 옮겨가는 내가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