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화요일 예레미아 14,17-22;마태오 13,36-43
여러분의 눈은 잘 보이십니까? 무슨 안경, 렌즈 선전도 아니고 무슨 말일까 하실 것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을 가만히 보면 세상을 잘 못 보는 친구들이 많아 보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두 명이 싸움을 합니다. 서로의 잘못을 이야기 합니다만 해결을 하려들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서로의 쌍방과실로 무마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쌍방과실..이런 말 어른에게서 배운 것들 아닙니까? 사회에서나 쓰는 용어 아닙니까? 그런데 믿음을 갖고 산다는 우리가 “제 탓이요” 하는 모습을 갖기보다는 나의 잘못을 탈색시켜 마치 내 잘못은 생각보다 별로 없는 것인양.. 서로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처리하는 모습을 요사이 볼 수 있는데요.
1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요. 요즘 세상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싸움에서 진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이기기만 한다면 실제의 자신을 보지 않으려 들 것입니다. 승리의 도취감에 휩싸여서 말이지요. 요즘 사람들이 예전 사람보다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유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의 영혼이 흙투성이 엉망진창인 것을 보기를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겠습니다만 현재 무엇에 집착해 있기에 정작 볼 것을 못 보고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아야 하는데요. 그런 회개의 모습이 선행될 때 당신의 말소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시잖습니까? 주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계속 하셨지만 못 알아들었던 것은 그저 자신의 것에 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오면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운다 하셨습니다. 그 불은 정화의 불이요, 새로운 밭을 위한 시간일텐데요. 하느님께서 그나마 이렇게 참아주시는 것도 감사한 시간입니다.
1독서 마지막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갖고 산다는 우리라면 무엇을 희망합니까? 그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나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난 지금 어떻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