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3 주간 금요일. 아모스 8,4-12; 마태오 9,9-13
살면서 사람들은 갈증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그 갈망, 갈증을 무엇으로 푸십니까? 신앙인들의 많은 분들이 성체조배, 기도 또는 활동 등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려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만히 놓고 볼 때 내가 그것을 하면서 해소되는 감정을 갖게되는 것이 아니라, 실상 그것을 이뤄주시는 분이신 주님, 당신 속에서 해결됨을 알 때 참으로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되는데요.
오늘 당신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고요. 다른 종교들을 보면 그 많은 것을 ‘나를 비우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라’ 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벽을 바라보며 하는 면벽 수행도 하면서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1독서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는 말씀처럼 나 홀로 하는 것에는 제약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얼마나 가야 하는지, 얼만큼 필요한 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다행스럽게도 미사 가운데 이런 경문 말씀이 있잖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요. 당신과 함께 하는 속에서 뭔가 이뤄진다는 것 말입니다.
예전 꽃동네에서 봉사할 때가 생각납니다. 그 곳에는 대다수가 병자들, 환자들입니다. 충북 음성에만 2만명이 수용되어 있는데요. 그런데 며칠 하다 보니 지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분들과 함께 있다 보니 병든 기운들이 저에게도 엄습해 오고 있음을 느꼈나 봅니다. 그래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 때 절 다시금 일어나게 해준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행복선언 제일 처음에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고요. 거기 나오는 가난한 사람들 주님, 아니시면 안되는 겸손한 이들을 뜻합니다. 우리에겐 다행스럽게 그런 분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그분에게 매달리십니까? 얼만큼 그분을 찾고 계십니까? 그 갈증 속에서 참된 것을 얻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