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화요일

2010. 6. 8. 오전 12: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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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0 주간 화요일.

  오늘 독서를 듣다 보면 이런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이거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엘리야라는 사람..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 조금 밖에 없는 모자에게 가서 먹을 것을 만들어 오라 시키면서 그것도 자기 먹을 것부터 먼저 만들라니..’ 아무 것도 없는 집안에 가서 욕심차리는 모습처럼 보여 어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생각에 긍정하신다면 여러분의 신앙이 계산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닌 가 반성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너무 계산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손해보기는 죽기보다 싫습니다. 아니라고 부정해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보지만, 나의 마음에 밑에 깔려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실히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을 가지면서도 기쁨보다는 괴리감에, 틈 사이의 벌어짐 때문에 더 힘들어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신앙의 근시안을 탈피하려면, 내가 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보면 됩니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음에도 남을 받아들이는 품이 넓지 못하면, 열심히 굴을 파기는 했어도 중심을 향해 판 것이 아니라 지평을 따라 팠기 때문입니다. 그런 굴은 두더지 굴이지 진리를 캐는 굴이 아닙니다. 진리는 중심에 있지요. 깊이 들어갈수록 남을 받아들이는 품이 넓어진다는 것은 나와 너의 장벽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음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오늘 사렙타의 과부는 이런 행동을 보입니다.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신심이 깨끗하고 맑은 마음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대로 응합니다. 하지만 우린 그 말을 듣고 또 계산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럼 믿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십니까? 한 발자국 더 나가야 합니다. 아이 손에 가시가 박혔을 때, 수영하는 법을 가르칠 때 어떻게 합니까? 아파도 상처를 벌려야지요. 그래야 가시를 뺍니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 속에 머리를 푹 잠겨야만 합니다. 그래야 뜨는 법을 배우지요. 머리로 이리저리 계산하기보다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자세를 가질 때, 내 신앙은 빛과 소금처럼 어느 것도 대체할 수 없는 참된 것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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