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간 금요일. 베드로 1서 4,7-13;마르코 11,11-25
복음을 읽다보면 모를 부분이 나옵니다. 오늘 부분이 그런 부분이 아닐까 하는데요. 예수님이 너무 옹졸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른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면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었기에 분노를 폭발하시어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으니 말입니다. 그 나무가 사실 무슨 잘못입니까? 그야말로 당신의 권능을 남용하고 있으며 너무 옹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복음서에 많은 부분이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것 아실 것입니다.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미카 예언서에도 보면 열심하고 철저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무화과나무에서 아무런 열매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 여기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무화과나무의 저주 이야기와 성전정화 사건을 연결하면서 문제는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성전이 관건임을 이야기 하는데요. 즉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기존적으로 존재하는 종교적 질서와 함께 성전도 부패하였으니 말입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가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아직도 성전 둘레에는 엄청난 수의 상인들과 가게가 있음을 말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성전은 환전상들의 돈벌이 장소가 된 것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 라는 시가 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라고요. 60년대 독재체제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4,19의 체험이 공간적인 배경으로 제시하고 있는데요. 우리의 모습도 비슷할 때가 많습니다. 겉모습은 남들에게 얘기하기에도 번듯한 자리에 있고, 남에게 꿀리지 않은 그런 위치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과연 내가 진정 잘 살고 있는가?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경우 말입니다. 이럴 때 살펴야 합니다. 내가 행하는 종교적인 행동이란 것이 혹시 상거래의 행위에 이용되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투표가 곧 다가오는 이 시즌, 다른 본당에도 이런 경우는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같은 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가서고 있으니 말입니다.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는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번듯하지만 속은 내실없는 신앙인의 삶.. 혹시 그런 것은 아니신지요.. 잘 쳐다 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