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9주간 토요일. 유다서 17,20-25; 마르코 11,27-33
비전문가로서 음악계의 야사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도 들어봤을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있습니다. 안드레아스 세고비아라고요. 세고비아라는 기타 브랜드까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가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는 수 많은 클래식 음악을 기타로 편곡했고 기타라는 악기를 바이올린, 피아노 못지않은 대중적인 악기로 알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아주 비열한 짓을 하나 합니다. 뭐냐하면 그가 살아있던 당시 파라과이에는 어거스틴 바리오스 망고레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세고비아가 남미를 여행할 무렵 이 망고레가 세고비아의 명성을 듣고 한번은 찾아와 자신이 제대로 연주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세고비아는 한 번 내 앞에서 연주해 보라 시킵니다. 이 곡도 시키고 저 곡도 시킵니다. 모든 곡을 다 연주하자 세고비아는 이렇게 얘기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고요. 하지만 세고비아는 그 때 눈으로 배운 망고레의 주법으로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는 기타주법을 유럽에 전파합니다만 한번도 망고레가 만든 곡을 연주하지는 않는 비열한 짓을 합니다. 즉, 자신만 간직하고 만 것이지요.
오늘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 같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만 최고로 여기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든 밟아 보려는 모습 말입니다. 바오로는 고린토 2서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을 사람을 살립니다.” 라고요. 그러기에 1독서인 유다서에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과연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은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그 선생이란 사람이 과연 제자들을 키워주는 사람인지, 이용하는 사람인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논문 잘 쓰는 방법” 에도 보면, 제자보고 논문을 쓰게 해놓고 실은 자신의 연구서적을 쓰게끔 이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말입니다. 이번 연중 8주간은 교육 주간이었습니다. 참된 교육을 위해 우린 무엇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까? 참된 것을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