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대축일

2010. 5. 25. 오전 1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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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대축일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성당 안에서 미사에 참례하고 계십니다. 많은 분들이 미사 안에서 주님의 은총을 받는다고 말씀들을 합니다. 그런데 한 시간여의 이 미사가 끝난 후, 이 곳을 떠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미사 전과 후의 모습 말입니다. 물론 나의 외모는 그다지 달라질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수의 분들은 달라져 있습니다. 생활과 사고방식, 말하고 행하는 패턴 등이 말입니다. 교회 안에 신자일 때와 교회 밖의 일반인일 때가 극명하게도 차이가 나니 말입니다. 예전 불교신자와 식사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식사 중에 강론과 법회에 대한 말이 나왔습니다. 제가 우스개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신자들은요? 강론을 들어도 자판기에서 커피 마시면서 다 잊어먹어요” 라고요. 그러자 그 불자인 분도 맞장구 치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말씀을 들어도 문고리 잡고 나가면서 다 까먹어요.” 라고요. 무엇이 우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그러다 보니 삶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말로는 남들에게 복음정신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필요한 행동이나 판단은, 믿지 않는 이들처럼 하고 사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 산다는 사실을 잊고사는 듯 여겨지는데요.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교회에 다니다 보면 이 단어가 쓰이는 활동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세미나, 성령쇄신운동, 성령기도회 등등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 이 말은 히브리 단어로 루아흐(ruah), 그리스 단어로 프네우마(pneuma) 라 일컫습니다. 즉 ‘숨이요 얼’ 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영어나 유럽의 현대 언어는 많은 부분을 라틴어나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방금 들으신 단어, 프네우마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에서는 pneumatico라 불립니다. 이 단어는 형용사로 ‘성령의, 성령적’ 이란 단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탈리아에 가보니 자전거 수리점 간판에도 이 단어가 쓰여 있었습니다. ‘아니? 무엇 때문에 그럴까?’ 고민을 하다 사전을 뒤져보니 이 단어에 파생어로서 ‘무엇인가 바람으로 그 안을 채울 수 있는’ 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자전거 바람을 채운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자전거나 자동차가 바람 빠진 타이어로 주행하다 보면 차 자체를 망가뜨리게 합니다만 알맞게 공기가 주입된 타이어는 얼마든지 속도를 내도 거뜬히 달려줄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만 우린 차를 타면서도 이런 사실을 모르다가 가끔 바람 빠진 타이어를 경험해야 바람의 중요함을 압니다. 성령의 역사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쪼그라든 타이어에 바람을 넣어야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성령은 좌절되어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에너지를 충만히 부어 주시어 우리를 활력에 넘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저 우린 무미건조한 생활의 연속일 것입니다. 복음에도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령을 통해 나의 노력만으로 할 수 없던 사랑과 용서가 생겨납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은 숨을 불어 넣어주시는 주님의 활동으로 살아감을 이제사 알게 되는데요. 이냐시오 드 라타키 총대주교님의 ‘성령이 아니면’ 이라는 시를 끝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 하느님께서는 너무 멀리 계시고/ 그리스도는 과거의 인물일 뿐이며 / 복음은 죽은 글자요/ 교회는 수 많은 기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권위는 지배로 바뀌고 / 선교는 선전이 되며 / 전례는 깡마른 과거의 추억이 되고 /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노예의 윤리로 바뀐다. / 그러나 성령 안에서는 온 세상이 부풀어 올라 / 새 세상을 낳는 출산의 소리를 지르고 /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며 / 복음은 생명의 힘이 되고/ 교회는 성삼의 친교가 된다. / 권위는 자유를 낳는 봉사가 되고/ 선교는 오순절 사건이 되며 / 전례는 과거를 되살리고 미래를 끌어당겨 / 지금 여기에서 맛보게 하는 잔치가 되고 / 인간의 행위는 하느님의 활동이 된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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