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만찬 성 목요일.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그동안 고해 성사 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성사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나의 모습이 어떻던가요? 세상이 변할수록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업그레이드입니다. 자동차 네비게에션이든, 전자제품이던간에 가끔씩 업그레이드를 시켜줘야 바이러스도 차단하고 “목표지점 근처입니다.” 해놓고 뺑뺑 돌리지 않습니다. 이렇듯 전자제품은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게으르지 않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그대로 놔둘 때가 많은데요. 여러분도 죄 고해할 때 이미 경험하셨잖습니까? 매번 같은 죄를 고해하고 있는 나를 말입니다. 그러다보면 뭐가 발견되는 지 아십니까? 자기의 신앙을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기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앙과 교류가 안 되면서 나의 신앙이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죄의 패턴이 반복되면서 사막처럼 건조하게 말라갑니다. 그런데 뭘 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요.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나의 죄가 계속 맴돈 까닭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주님과 나의 관계가 예전 처음 세례 받았을 때 그대로, 그저 멈춘상태에 있었기 때문인데요. 주님께서 왜 그런 말씀과 행동을 하시는 지, 그분이 나랑 무슨 관계로 깊어져야 하는 지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하시잖습니까?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과연 나는 뭘 몰랐고, 무엇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까? 여기 계신 여러분의 대부분은 그 누군가의 부모님이십니다. 부모가 되면 짜릿짜릿할 때를 느낄 때가 있답니다. 마치 “희태야~ 희태야” 라고 자녀 이름을 불러주면 어린아이는 반응하지요.. “엄마? 아빠?” 이때 부모는 좋아 죽습니다. 견디지 못할 기쁨 때문에 말이지요. 조금 시간이 지나 아이가 크면, 굵은 목소리로 ‘아버지, 어머니’ 하면 또 다른 느낌입니다. 물론 처음에 아이는 잘 모릅니다. 왜 부모가 자기 이름을 불러대는지를요. 하지만 그 아이가 그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지요.
김춘수의 유명한 시,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제자를 그렇게 불러주고, 씻어줄 때, 단순한 친함의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단순히 아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차원을 넘어선 사랑은 둘만의 관계에서 끝맺지 않고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는 말씀을 들었건만 우린 어떻게 해왔습니까? 그동안 얼마나 미워하는 시간을 보내왔습니까? 그동안 얼마나 증오하는 마음이 가득찼습니까? 하지만 그 미움과 증오는 상대를 해치고, 그 사람을 파멸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흉기로 내리찍고 있었습니다. 심수봉의 유명한 노래 ‘백만송이 장미’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지요.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요즘 꽃이 많이 피었지요. 형형색색의 그 꽃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그런 꽃을 내 가슴에 피워내야지요. 사랑과 용서로 피어나는 부활의 꽃을 말입니다.
2독서에 “너희는 나를 기억하며 이를 행하여라” 라는 말씀처럼 매일 당신을 기억하며 나의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되새겨 가야 하겠습니다. 신앙은 예습이 아니라 어쩌면 복습에 더 가깝습니다. 되새기는 속에서 당신이 어떤 분인지 점차 깨달아 갑니다. 왜 그런 사랑을 하셨는지를 말이지요..
이 시간을 통해 당신이 보여주셨던 사랑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행해야 할 지 잘 헤아려 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