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목요일.
여러분은 오늘 독서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 들지 않으셨습니까? 하느님은 그렇게도 “내 말을 들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지만.. 얼마나 사람들이 듣지 않았던지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을 보며 ‘거... 말 좀 듣지~’ 하는 생각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말 좀 들어야 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도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면 과연 믿으시겠습니까?
순간 이런 반박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니에요..저 착하게 살고 있어요..” 라고요. 아담과 하와가 처음 저지른 죄를 우린 “원죄”라고 하지요. 죄의 시작인 원죄의 근원의 바탕의 뿌리엔 무엇이 깔려 있습니까? 그 안에는 “나도 하느님이 되고싶다.”가 깔려 있습니다. 나도 신(神)처럼, 하느님처럼 생각하고 내 뜻을 추구하고 싶다는 생각, 갖고 삽니다. 그것이 어떻게 현실세계에서 벌어집니까? 바로 하느님이 주신 ‘자유의지’ 라는 것을 통해 일어납니다. 순간 이런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인간에게 자유를 줘놓고 무슨 하느님의 뜻을 또 따르라고 하지? 그냥 놔둬야 하는 거 아냐?” 우린 자식을 사랑하며 키운다고 해서 부모의 뜻만을 따르는 꼭두각시로 키우진 않습니다. 그 자유로움을 ‘허락’ 하며 키우지요.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마음도 그러한 마음인데요. 루가 복음 9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이 나서서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니 막지 마라." 라고요. 예수님과 같이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지만 오히려 주님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찬성하고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신 열려있는 주님의 모습을 보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당신의 넘치는 포용력을 이용하기보다는 거기에 동참하며 헤아리는 내가 될 때.. 하느님도 이웃의 삶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