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 화요일

2010. 3. 8. 오후 10: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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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3주간 화요일. 다니엘 3,25-43;마태오 18,21-35

성당마다 참 많은 수의 성가대들이 있습니다. 어른, 어린이, 청소년 등 말이지요. 하지만 제가 아는 그 성가대는 특징적인 구석을 띠는 성가대였습니다. 이른바 장례가 날 때만 나오는 그 성가대의 이름은 ‘빈손 성가대’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당신께 돌아간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데요.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싶습니다. 하지만 예전 김국환의 ‘타타타’라는 노래처럼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라고 하듯이 살다보면 뭔가 건지고, 얻는 구석은 분명 있는데요. 여러분은 이제껏 사시면서 얼마나 건지고 받은 인생을 사셨습니까?

많은 분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생각해보니 참 많이 받고 살았던 인생이네요.” 라고요. 하지만 그 말씀 이후에 “그렇다면 이제부터 상대방에게 뭔가 해주려는 마음이 생깁니까?” 하고 물어보면, 본전 생각이 나는 지 아직도 뭔가 꽁해있는 구석들이 보입니다. 무엇이 아직도 손과 입을 잡아 틀어막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만 탈렌트 빚진 사람이 나옵니다. 예전 헤로데 왕의 1년 연봉이 900달란트라니까 이는 셈할 수 없는 큰 돈인데요. 그런데도 임금은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주었다.” 고 합니다.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될까요?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 만마리의 살진양으로 받아주소서.”

아무 것도 없는 ‘빈손’ 의 마음으로 당신께 다가가는 자세, 그것이 참된 봉헌의 마음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받을 것 다 받아놓고 또 뭔가를 기다리는 자세가 아니라, 겸손되이 당신께 무릎 꿇고 다시 시작하는 자세 말입니다. 그렇게 될 때 나와 남이 보일 것입니다. 얼마나 서로가 중요한 존재인지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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