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월요일.
작곡을 전공한 어떤 청년이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 이젠 라디오나 cd에서 나오는 음악을 못 듣겠어요. 그 음악소리들 때문에 제가 뭔가 작곡을 하면, 자꾸만 그와 비슷한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말이에요.” 라고요. 작곡을 하려고 음악공부를 시작했는데 정작 남의 소리를 듣더라도 이제는 자기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고 있으니 참 큰일처럼 보였습니다.
장자의 내편에 보면 소문(昭文)이란 연주가가 나옵니다. 그의 거문고 연주는 신기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더 이상 연주하지 않았다는데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줄을 하나 뜯을 때마다 생기는 하나의 소리가 좋았는데, 이제는 자신의 연주로 자연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는데요. 즉 인위적인 음악이, 자연의 완성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깎아버리고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럼 공부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에게서 나오는 소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나병환자였던 나아만은 병이 낫습니다. 하지만 병이 나을 수 있었던 계기는 아람군이 약탈해 데려온 어린 이스라엘 소녀의 한마디로 비롯되었습니다.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내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에 화가 나 집에 가려합니다. 뭔가 만져주고, 관심을 써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엘리사가 그러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다가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자신보다 약하고 비천한 사람들의 한 마디가 그를 살려냅니다.
복음의 예수님도 진정한 구세주란, 자기 고향에서만 환영받는 구세주가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보면서 과연 어디까지 보고 있습니까? 자신의 편견마저도 깨뜨려갈 때, 참된 주님의 모습이 보일텐데요. 오늘도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에서 그분의 참된 목소리를 구분해 내는 능력을 키워 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