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화요일. 열왕기 상 8,22-30;마르코 7,1-13
신앙생활을 하면서 헷갈리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번 말해볼까요? 우선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예수님이 꽤나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치요? 좀 더 들어가서 하느님이 구약에서는 왜 율법을 주시고, 신약은 왜 사랑을 가르치셨을까요?
당신의 구원의도를 알아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 도 버린다.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였지만 너희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게 한다.” 당신이 우리에게 사랑보다 먼저 율법을 가르쳐 주신 이유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하느님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솔로몬이 그랬잖습니까? “주 이스라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도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이런 기도가 나올 수 있던 배경에는 솔로몬은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알았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진정한 의도는 당신을 통해 참된 삶을 살기를 바라셨지요. 그것은 사랑을 통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찰흙작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턱대고 찰흙을 반죽해서 갖다 붙이기만 한다고 됩니까? 아니지요. 그러면 금방 무너지고 맙니다. 먼저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입혀야만 제대로 설 수 있지요. 그렇게 당신은 율법이라는 철사 뼈대로 신앙의 기초화 작업을 하고나서, 사랑이라는 살을 입히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다고 보시면 반만 보신 겁니다. 사실 율법학자들의 한계는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이제부터입니다. 즉 말씀이라는 문자를 넘어서야만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말씀을 존중하지만 그것에 메이지 않고 넘어설 때, 하느님의 계명이 어떻게 실생활로 연결되는 지에 대한 통로가 그제서야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 규칙, 법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덮여서 움직일 때 자기 구실을 합니다. 자기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세상을 잘 흐르게 만들지요. 이제 그 위에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 갈 때, 당신의 의도를 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