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간 수요일

2010. 1. 27. 오전 12: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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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3주간 수요일. 사무엘 하 7,4-17;마르코 4,1-20

여러분께 질문 한 가지 던져볼까 합니다. 한번 잘 생각하고 대답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우린 모두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부모님은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 육체를 물려주신 집에 계신 부모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부모님이 나의 진짜 부모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내가 태어날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혹시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나를 데려온 건 아닐까요?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사실 자기가 태어날 때의 상황을 뉴스보도처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그분이 나의 부모님이라고 여기고 믿으며 지금까지 모시고 있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요. 그분들이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현장을 체험하면서 나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왜 차별을 두셨을까요? 그건 1독서에 답이 나옵니다.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즉 그분이 우릴 선택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내가 그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택하셨지요. 내가 부모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나를 낳고 기르셨지요. 그분이 나의 부모님이라는 걸 아는 순간 우린 안심을 합니다. 그러기에 루가 복음 10장 23절 말씀처럼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하셨습니다.

 본 적도 없고 음성을 들은 적도 없지만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린 기뻐합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헤매는 사람을 보곤합니다. 믿으면서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안해하고 여전히 못 믿어하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것에 대해 혼내지 않으시고 말없이 생명을 연장 시켜주시며 살게 해주시는 신비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그분이 다른 사람도 아니라 나를 선택하시고 눈을 열어주신 헤아릴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어떤 마음을 드시는지요. 거기에서 눈을 떠 갈 때 복음에서 얘기하는 몇 백배의 열매를 나도 맺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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