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금요일.
예전 여러분도 아시는 이솝우화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연못에 개구리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수가 많아지다 보니 자기들을 통솔할 왕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 기도를 하여 임금님을 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은 “너희에게는 왕이 필요없으니 그냥 지금처럼 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은 “그래. 그럼 왕을 잘 모셔봐라” 하면서 통나무 한 토막을 연못에 던졌습니다.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니 순간 무서워 떨었습니다. 근데 통나무는 아무 말도 안합니다. 이에 “이런 왕은 필요 없으니 다시 왕을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황새를 보내면서 “이 새가 너희를 지배할 것이다.” 하고 하늘이 말했습니다. 이를 본 개구리들은 참 좋아했습니다. “저거 봐요 당당한 저 풍채를, 머리를 높이 쳐들은 저 모습을 이건 참 정말 임금님이다! 저 분더러 우리를 지배해 달래자.” 하면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황새는 다가오는 개구리들은 보는 족족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본 원로급의 개구리는 “아아 만족하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하다가 모두 잡혀 먹었다는 이야긴데요.
오늘 독서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세워주십시오.” 그들은 요구합니다. 다른 나라는 임금의 통치로 잘 이뤄지는 것 같은데 우린 기껏 사제, 예언자만 있으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지요. 규정에 맞게 움직이고, 따르고 실천하는 권위가 멋있어 보이고요.
그런데 하느님은 왜 그런 왕이 필요없다고 여기셨을까요? 독서에 사무엘이 차근차근 잘 말해놨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하느님은 다스리지 않는 듯 하지만 천지를 다스리시고, 아무 일도 안하는 것 같으시지만 모든 천지조물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스스로가 일을 다 하고 계시기에 그 자연의 순리에 맞게 우리 인간은 자유롭게 알아서 살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통치하고, 굴복되고 복종하고 이런 것은 원래 창조하신 그 분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늘도 그런 지배계급에 속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그 힘을 행사하려 하지요. 입신양명으로 점철된 교육은 우리 후손들을 점차 살기 힘든 세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거기 들어가지 못하면 사람으로서의 대우받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도 임금이라는데 그럼 어떤 왕이셨을까요? 복음처럼 죄를 용서하고, 사람을 배불리시며, 치유하십니다. 그러면서 ‘선행은 무철적(無轍迹)’이라는 말처럼 선행을 하면서도 무철적, 바퀴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서도 착한 일을 한다는 의식조차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알고 있는 왕은 어떤 왕의 모습입니까? 뭔가 의식들을 하지요. 그동안 수없이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왕을 기어이 사람들이 원했기에 하느님은 말씀을 사람 가운데 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왕을 잘 봐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왕과 뭐가 다른지, 왜 그런 행동을 하시는 지 말입니다. 그걸 깨달아갈 때 우린 그분의 섭리를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