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주간 월요일

2010. 1. 17. 오후 5: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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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월요일. 사무엘 상 15,16-23; 마르코 2,18-22

예전 명동에서 성서 못자리 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사실 모든 신부님들이 쉬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강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특히나 전날 주일밤에 청년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말이지요. 하지만 성경 공부를 한다는 기분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1년여를 넘기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들어주고 좋아해주는 것은 참 고마운데, 개인적으로 계속 이러다가는 약장수가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본래 성경의 말씀을 잘 해석하고 풀어주다 보니 다른 것, 즉 남이 알아주는 맛에 도취될 수 있겠구나 하는 것 말입니다. 그 이후 그런 이유도 있었고 본당 사정상 그만두게 되었는데요. 사실 사람들은 남이 알아주는 맛으로 삽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실상 그로 인해 남들의 칭송에 목매다 보면, 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식대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데요.

오늘 독서에 사울왕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주님의 도움으로 전쟁을 이기고 돌아오지만 전리품에는 손대지 말라는 명을 어깁니다. 이에 대해 책망하는 사무엘에게 사울은 이렇데 둘러대지요.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전리품으로 바치려는 것입니다.” 과연 그게 이유였을까요?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 따지러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요한의 제자와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단식 자체만 보면 자신을 바라보는 참으로 좋은 시간이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들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 이런 노래가 나왔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네.”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은 시므온 예언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겪는 위험 중에 하나가 있다면, 나의 뜻을 마치 하느님의 뜻인 양 위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명분은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드높이는 모습으로 비춰지는데요. 생활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비슷비슷한 상황 속에서 좋은 분별력으로 사시길 오늘도 기도 드립니다.

댓글 1

  • 2010년 1월 17일 오후 6:32

    때론 상큼한, 때로는 매서운 북풍을 가르며 새벽에 미사를 가면서..오늘도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경배로 하루를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