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 주간 토요일.
나태주 시인의 들꽃이란 아주 짧은 시가 있습니다.
들꽃..가까이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런 시입니다. 정말 산에 가보면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들꽃이 피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신기하기조차 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도 들여다보게 되는데요. 어떨 때는 나 스스로가 대견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보노라면 나도 참 작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작은 서로서로를 어떻게 보아주고 계십니까?
어제 독서에 이어서 드디어 왕을 뽑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역시나 당신이 고르신 인재는 생김새부터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할 정도로 요즘말로 훈남 스타일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어땠습니까? 다윗에 대한 지독한 질투로 인해 주님을 배반하게 되면서 처참한 말년을 보냅니다. 유명하다는 다윗왕도 남의 부인을 범하는 죄를 짓게 되고 그 지혜롭다는 솔로몬 왕도 말년에는 결혼정책으로 맺어진 이방인의 부인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흐려지고 자신도 이교도의 신에게 제사를 바칩니다. 대단했다는 임금들의 모습이 그다지 좋지 않은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당장 여기서 결론을 내린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그저 비극적인 역사로만 여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시어 당시 죄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고요.
아마도 당신은 우리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 존재들인지 아시는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가까이 여겨보고 오래 들여다봐야 서로간의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당신은 아시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표현까지 쓰십니다. 그렇다면 우린 서로의 약점을 어떻게 봐주고 있습니까? 그저 꼬집고 험담하는 데 그치지는 않습니까? 진정 그를 위한 사랑을 위해 얼마나 여겨봐 주고 계신지요. 오늘은 주말입니다. 그래도 평일보다는 마음이 여유롭다면 그런 시간 한번 해 봄직 하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