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4주간 월요일. 아가 2,8-14;루카 1,39-45
여러분들에게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한번 속으로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전 젊으셨을 때 연애편지를 써 보거나 받아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때 그 안에는 무슨 내용이 있었습니까? 물론 진실된 내용도 있었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잘 표현하는 ‘손발이 오그라든다.’ 는 표현처럼 유치찬란한 말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표현을 읽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실실 또는 헤벌쭉 하게 웃는 자신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무슨 이유에서이겠습니까? 그건 그 안에 사랑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와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무슨 대중가요 마냥 참 낯간지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극도의 찬미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눈에 이뻐보이기 때문에, 너무 아름답다고 느끼기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당연히 칭찬한 이유밖에 없는 것이구요. 그런데 그랬던 우리들이 달라집니다. 예전 아기였던 우리들의 피부는 참 보드라웠습니다만 어느 사이엔가 나이가 들면서 나무껍질처럼 변한 것을 봅니다.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어느 사이엔가 거칠게 변한 것을 보곤 합니다. 그래서 처음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칭찬하기보다는 먼저 보이는 그 사람의 기미, 주근깨나 모난 성격을 먼저 찾아보며 즐거워합니다. 원래 가진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배제한 채 단점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아보는 나를 보곤 합니다. 어제 복음과 같은 엘리사벳은 그 연세에 임신을 했으면서도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하며 성모님을 칭찬하기 바쁩니다.
난 무엇을 보려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십니까? 생각보다 우리에게 남겨진 물리적 시간은 점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우린 사랑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그렇다면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잠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