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 미사. 바룩 5,1-9; 필립비 1,4-11; 루카 3,1-6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2월 1일부로 이태원에서 방배동 성당으로 부임한 곽희태 스테파노 라고 합니다. 여러분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꾸벅 절한다.)
사람이 새로 들어오면 기존에 계신 분들이 시키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전학생이 오든, 신병이 오든, 신입사원이 들어오든 간에, ‘이거’ 하나는 꼭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요.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노래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미사 중인 관계로 겉으로는 표현 못하고 계시지만, 이미 맘속에서는 외치고 있을 그 한 마디.. “노래.. 노래..”(팔을 흔들며). 여러분께 불러드리겠습니다. 노래는 요즘 ‘아이리스’ 라는 드라마 주제곡을 불러 유명한 가수 신승훈의 예전 곡. ‘I Believe’. 영화 ‘엽기적인 그녀’ 에 나왔던 그 노래 부르겠습니다.
“그대란 이유만으로 나에게는 기다림조차 충분히 행복하겠죠..”
예.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노래방에서 들으실 수 있겠습니다.
이제부터 신성한 미사 시간에 가요를 부른 이유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방금 노래 가사는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대란 이유만으로 나에게는 기다림조차 충분히 행복하겠죠.” 제가 방배동 성당에 처음 온 날. 사제관 테이블에는 이렇게 쓰인 카드가 놓여있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라고요.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이렇게 기다려 주셨는데, 사랑하는 연인을 당장에 보고 싶지만 기다리는 상대가 바로 그대, 당신이기에. 기다림의 길고 지루한 시간조차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렇다면 과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의 이 시간, 여러분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 하십니까?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2차 대전이 끝나길 바라는 원작자가 인간의 삶의 내부에는 원래 ‘보편적인 기다림’ 이 있음을 알아내고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 를 기다리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끝나는 2막 동안 두 주인공은 많은 말을 쏟아내지만 끝내 고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만나리라는 희망은 가지고 작품은 끝납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고도는 마치 우리가 기다리는 구세주의 성격과 닮아 보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항상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무엇을 기다리는지 조차 모르고, 어떻게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지만 분명 기다림은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작품 속 주인공들과 우리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분을 기다렸지만 우린 이미 아는 분을 기다린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려 보신 분은 아시지만 기다리는 대상이 확고하면 확고할수록 그 마음은 더욱 더 열절해집니다.
오늘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애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서, 또 한 분의 주님을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참다운 나눔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 만남과 희망이 있으려면 우선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복음에서 나온 그 말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라는 말씀처럼 준비된 자세 속에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관심 있는 많은 것들에는 돈과 시간을 쏟으면서 그분과의 만남의 시간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십니까? 대다수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기도해야 하는데... 미사 잘 나가야 되는데...’ 이 만남이 그저 숙제처럼, ‘하지 않으면 성사 봐야 하는..’ 그런 만남의 부류라면 만나도 기쁘지 않는 만남일 것입니다. 이제 우린 새롭게 봐야 합니다. 앞으로 오실 주님이 나에게 있어 어떤 분이신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보다 아는 사람을 만날 때 할 이야기가 더 많다는 것을 우린 생활 속에서 압니다. 그분과 이야기 할 것이 별로 없으신 분이 계시다면 내 신앙생활의 현 주소를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그게 예수님과의 친분정도를 설명해 줄 것입니다. ==잠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