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 자헌 기념일.
은퇴를 하신 어른들을 보노라면 평소에 일을 하고 계실 때 보다 훨씬 빨리 늙어있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노라면 그가 살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일’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마치 기계 톱니 바퀴가 돌아가듯 그렇게 일은 그를 살리는 원동력이요, 그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놓아야만 할 때, 그 다음 그가 선택하고 찾아야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요?
어린이들도 놀이터에서 놀다가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엔 손에 흙을 털고 나오듯이 우리들도 그런 때가 다가오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남의 이야기마냥 생각할 때가 많아 보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자기 인생의 마침표인양 두렵게 여기는데요. 1독서에서 자기 뜻대로 안되는 것을 발견하고 자리에 눕는 왕을 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권력이 있을 때에는 나도 쓸모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그러나 그 힘이 다할 무렵 모든 것이 헛된 것처럼 보입니다.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런 허한 모습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언젠가는 갈 것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것이 끝이 아니지요.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나중도 봐야 하지만 지금의 삶도 바라봐야 하는데요. 보왕삼매론이란 불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고 있을 때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삶에 곤란이 없으면 자만심이 넘치고 잘난 체 하며 어려운 사정을 모르게 됩니다. 즉 근심과 걱정을 짊어지고 살아가라는 것인데요.
육체적, 정신적인 늙음은 오히려 재앙이 아니라 참되게 그분께 다가가는, 필요없는 힘 빼기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있던 것을 자의든 타의든 내려놓을 때, 우린 더 이상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지않고 주님처럼 초월적인 삶을 살 수 있는데요. 성모님의 인생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자신의 계획은 하나 없는 그런 인생이었습니다만, 그 속에서 참됨을 얻으셨잖습니까? 자신의 있던 힘을 뺄 때 진정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